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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 칼럼] 갈매기 여행
  • 편집국 편집장
  • 등록 2019-09-30 16: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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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 송상용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교수, 스포츠닥터스 상임위원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송상용 교수 = 삼성서울병원 홈페이지


“갈매기 고기가 맛있나?”

“야! 갈매기살이 갈매기 고기인 줄 아니? 돼지 횡격막이야.”

“그런데 왜 갈매기살이라고 해?”

“횡격막이 우리말로 가로막이라고 하는데 가로막살이 가로막이살로 변하고 계속 변해서 갈매기살이 된 거야. 이 무식한 놈아.”


불금의 술집, 옆 자리 일행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


항상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지라 열량이 낮은 고기에 관심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갈매기살이다. 돼지 한 마리에서 1킬로그램도 나오지 않는 부위로 일반인들도 이게 횡격막이라는 것을 안다. 발음을 하다 보면 횡경막이라고 발음을 하게 되어 어떤 이들은 횡경막이라고 무심코 쓰는데 받아쓰기시험에서 틀리는 잘못된 철자법이다.


병리의사의 직업 특성 상 진단 용어를 쓰다 보니 용어에 민감하기도 하고 진단명이나 글자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용어 사용에 시간을 종종 쓴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떻게 이해를 도울까 하는 생각에 의학 용어 설명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이 날도 갈매기살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내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가로막과 횡격막은 과연 의학 용어로써 적당한가라는 물음이 떠오른 것이다. 의사들은 아마도 100% 이 단어의 어원이 diaphragm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diaphragm은 원래 어떻게 생긴 말일까라고 물으면 얼마나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강의를 할 때 도입부에서 가급적 어려운 의학 용어들을 이해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데 대부분 의학 용어들은 그리이스와 로마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나 역시 공부를 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내가 학생 때 배웠으면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엄청난 학습량의 그 시절에 그럴 기회는 없었었다. 여하튼 학생들이 내게 배움의 기회를 주듯 환자들도 내게 배움의 기회를 준다. 그래서 수업이나 멘토링이나 인터뷰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한다.


“의사들의 스승은 환자이고, 교수들의 스승은 학생이다.”


실제 환자를 통해서 의사들은 평생 배움을 얻고, 학생 수업을 준비하며 교수들은 잊은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게 된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 된다. 일이기도 하지만 배움도 있고 즐거운 게임이기도 하다.


여하튼 단어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개인적 즐거움의 하나이다 보니 이 날도 diaphragm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Diaphragm은 dia와 phragm으로 구성된 그리이스 기원의 단어인데, dia는 across/through라는 의미의 접두어이고 phragm은 fenc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의 dia가 들어간 단어로는 diagnosis, dialogue, diameter, diagram, diarrhea, diabetes 등이 있다. 의학 용어들만 살펴 보면 diagnosis는 across/through+recognize에서 진단이라는 단어가 되었고, diarrhea는 across/through+flow에서 설사라는 단어가 되었다. Diabetes는 go through라는 단어가 siphon을 의미했고, 이것은 당뇨 환자가 소변을 많이 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Diaphragm은 궁극적으로는 칸막이 (partition)라는 의미로 쓰였으며 의학에서는 가슴과 배를 구분하는 구조물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횡격막이나 가로막은 diaphragm을 대치할 수 있는 적절한 용어인가?


횡격막은 흔히 말하는 too much 용어이다. 즉 diaphragm은 격막으로 충분한데 굳이 횡이라는 가로라는 의미의 한자를 더 붙인 것이다. 물론 횡격막은 가로와 세로의 관점에서 보면 가로로 위치하고 있기에 좋게 보면 상세한 용어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해부학이 유럽에서 시작하여 동양으로 들어온 통로는 주로 일본과 중국이다. 한자문화권의 선구자들이 의학용어를 만들며 가로 횡을 격막에 붙여 놓은 것이다. 우리의 학자들은 우리말 용어로 가로막을 선정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용어를 선택했을까? 참여하지 않은 내가 추측해 보면, 두 가지 상황이 가능하다. 하나는 가로막다의 어근인 가로막을 사용했을 가능성, 둘은 횡격막의 가로 횡, 격막의 막는 막의 합성어이다. 전자는 막는다가 주 의미이고 후자는 가로의 막이 주 의미라는 점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러나, 가로막이라는 단어는 ‘세로막은 어디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막이 주 의미여야 하는 diaphragm의 본질을 와전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게다가 가로막살에서 엉뚱하게 바닷새인 갈매기까지 변형되는 언어의 변화와 생명력 앞에서 식자들의 노력이 새털만큼 가벼움을 느낀다.


생각을 정리하면 diaphragm을 우리말화 한다면 한자어를 사용할 경우 격막, 순우리말을 강조할 경우 나눔막이 적당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가로막이 아니었다면 diaphragm이 갈매기로 변하는 고대 그리이스로부터 현대 한국에 이르는 문자의 시간 여행은 꿈도 꾸지 못 했을 테니 이 또한 즐겁다.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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