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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 칼럼] 신생아 돌연사증후군, 건강기능식품, 쇼닥터, 그리고 근거중심의학
  • 김세영 기자
  • 등록 2020-12-09 16:06:46
  • 수정 2020-12-09 16: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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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명승권 교수(의학박사/가정의학과 전문의), 스포츠닥터스 자문위원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의생명과학과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암예방검진센터장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가정의학과 책임의사



미국의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벤자민 스폭이 1946년 [아기와 어린이를 돌보는데 필요한 상식서(The Common Sense Book of Baby and Child Care)]를 출판한 후 그가 사망한 1998년까지 5000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의 1958년 판에서 스폭 박사는 신생아가 구토를 하면 구토물이 목에 걸려 질식할 수 있기 때문에 재울 때 눕히지 말고 엎드려 재워야 한다고 서술했다. 스폭 박사의 영향력은 엄청났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져 많은 의사들이 비슷한 권고를 했었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도 아이들은 엎드려 재워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같은 기간인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약 40년 동안 미국에서는 10만 명 이상의 건강해 보이는 신생아들이 아기침대에서 잠이 든 후 더 이상 깨지 않는 신생아 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했다. 1990년대 초부터 연구자들은 엎드려 재우지 않고 눕혀서 재웠을 때 신생아 돌연사증후군이 적어도 50% 감소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또한 2005년 ‘국제역학저널’ 학술지에는 기존 40편의 논문을 종합한 메타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그 결과 눕혀서 재우는 것과 비교했을 때 엎드려 재우는 경우 신생아 돌연사증후군이 약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저자들은 ‘이 결과를 좀 더 일찍 대중들에게 알려 신생아들을 눕혀서 재우도록 했다면 영국에서 1만명, 유럽, 미국, 호주에서 적어도 5만명의 신생아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현재 옳다고 믿고 있는 의학적 지식이 새로운 연구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학은 다른 분야와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기존에 옳다고 믿었던 의학적 지식이 새로운 연구를 통해 틀린 것으로 밝혀져 폐기되고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최근 들어 대규모 의학적 연구결과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면서 특정 의학적 진료지침이 몇 년 만에도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신생아 돌연사증후군과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근거중심의학’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벤자민 스폭 박사가 활동했던 시대보다 50~60년 이상이 경과한 지금도, 근거중심에 기반하지 않은 진료를 하거나 방송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근거중심에 기반하지 않는 의학상식이나 지식을 퍼뜨리는 의사나 관련 전문가들이 허다하다. 


1996년 데이빗 새킷 박사가 공식적으로 주장한 근거중심의학이란 개별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임상적 전문성과 함께 최신 연구결과를 통합한 ‘현존하는 최상의 근거’를 이용해 의사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최상의 근거는 특정 질병에 관한 진단, 예방 및 치료 등과 관련해 과거의 의학적 지식이나 단순한 진료경험 및 사례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최신의, 최상의 연구결과를 통합한 근거를 말한다. 벤자민 스폭 박사가 신생아는 엎드려 재워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배경에는 누워서 재우면 혹시라도 구토를 했을 때 기도로 내용물이 넘어가 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논리는 의학적으로 입증이 안 된 가설에 불과하다. 어떤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인과관계를 밝히거나, 특정 치료방법 등이 효과가 있는지 입증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다던가 의사들의 진료를 통해 습득한 가설이나 경험 혹은 사례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현대 과학 및 의학에서 인정한 연구방법을 이용해 입증해야 한다. 


특정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연구방법에는 가장 근거 수준이 낮지만, 가설이나 원리를 만들어 내는 기본 연구방법으로 세포, 미생물 및 분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실 연구, 쥐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이 있다. 반복적인 실험실 연구와 동물실험을 통해 특정 치료방법이 효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 그 다음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관찰연구와 무작위 비교임상시험을 통해 효능뿐만 아니라 안전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실험실 연구와 동물실험에서 효능이 있더라도 사람을 대상으로 그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효능은 있지만 부작용이 심각해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어느 한 임상시험에서 특정 치료법이 사람을 대상으로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임상시험에서는 효과가 없는 경우도 많기에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서 일관된 효능과 함께 부작용이 심각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그 치료법이 해당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요약하면 진료할 때는 의사 자신의 경험이나 사례 만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되고, 기존에 알려진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최신의 연구결과를 통합해 적용해야 한다. 벤자민 스폭 박사가 주장한 ‘신생아는 엎드려 재워야 한다’는 가설은 자신의 경험이나 사례만을 근거로 만들었기 때문에 진료에서든 책에서든 그러한 주장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적지 않은 의사들이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확립되지 않은 각종 비타민제 등 건강기능식품을 언론매체에서 공공연히 선전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이런 의사들을 ‘쇼닥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규제하고 있다. 비타민, 홍삼, 오메가3 지방산, 유산균, 칼슘, 비타민D, 글루코사민 등 거의 모든 건강기능식품은 실험실 연구나 동물실험 등에서 개별 기능성이나 효능이 제시되었고 가설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효능이나 안전성이 확실히 입증된 것이 없다. 특히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저명한 의학술지에 발표된 대규모 임상시험과 이를 종합한 메타분석 논문의 결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건강기능식품은 효능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임상시험과 메타분석에서는 비타민제나 항산화제가 오히려 사망률이나 일부 암의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고용량 비타민D의 사용은 오히려 골절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비타민 등 건강기능식품을 선전하는 의사들은 적지 않은 경우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을 모른 채 자신의 외래 경험, 실험실 연구, 동물연구, 그리고 일부 소규모 임상시험연구만을 근거로 효능을 과장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근거중심의학의 견지에서 볼 때,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통해 건강을 유지할 목적으로 각종 건강기능식품, 민간요법, 보완대체요법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대신에 근거중심의학을 통해 확실히 입증된 금연, 절주, 표준체중의 유지, 과일과 채소 골고루 섭취하기, 규칙적인 운동, 짜게 먹지 않기, 적색육(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과다하게 먹지 않기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만들 것을 권유한다.

 

근거중심의학의 개념이 벤자민 스폭 박사가 활동했던 시기에 나왔더라면 수만 명 신생아의 안타까운 돌연사를 막았을 것이다. 근거중심의학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현재, 임상적 근거 없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소비가 사라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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